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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강 이단 신천지의 언약에 대한 거짓주장과 성경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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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신천지 예방교육


언약에 대한 신천지의 거짓주장과 성경적 의미

(구약은 예수님, 신약은 이만희이라고 하는 신천지의 거짓복음에 대하여)


이단 신천지 이만희의 언약은 예언(비유로 봉함됨)이 실상으로 성취되는 미래적 약속 이행으로 인식한다. 이단 신천지는 구약을 이루신 분은 예수님이고, 신약을 이루신 분은 예수님의 영이 임한 보혜사 이만희라고 주장한다. 렘31:31절의 옛 언약 새 언약을 근거로 제시한다. 시작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성경의 구원자는 구약의 여호와는 메시야 (하나님은 구원자) , 신약의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구원자=여호와는 예수=여호와는 구원자)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행4:12 구원은 오직 예수님 뿐이시다.]  결과적으로 신천지는 오늘날 구원자는 옛 언약을 이루신 예수님이 아니라 새 언약 보혜사 이만희를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종교 사기꾼, 적그리스도, 거짓선지자, 우상숭배자들, 악한자의 아들들이다.  출발은 비슷 해보이지만, 이단사이비 교주들은 신도들을 지옥으로 안내하는 사탄의 졸개들이다.


언약의 의미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긴 오류이다.

(구약성서, 신약성서, 옛 억약, 새 언약 , 구약시대, 신약시대)


정진영목사

한국기독교 이단사이비 정보센터



성경의 언약은 동등한 입장의 협약 약속의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부 조약 즉 일방적 조건부 명령이라고 보는것이 성경적 의미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 ... 언약에 대한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다.  언약은 하나님이 택하신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유지 및 관계 단절에 대한 관계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방편이라고 보는것이 성경적 진리이다.



첨부파일 확인 1 언약에 대한 신천지의 주장과 성경적반증

첨부파일 확인 2 인간과 하나님의 언약 - 웨인그루뎀



Ⅰ. 언약에 대한 신천지의 주장


1. 신천지 교재 내용 (中)

성경은 언약서이다.

언약서라는 말은 말씀 언(言)자에 맺을 약(約)자 글 서(書)자를 써서 말로 맺은 글로 약속한 것을 글로 남겼다. 이게 바로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약속의 주체 : 하나님.

약속의 대상 : 택한 선민.(택한 선민은 언약을 맺었으니 언약을 지킬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 약속은 맺을 때가 있고 그 약속을 지킬 때가 있다.


약속은 몇 2 가지가 있다. 구약과 신약.

1) 구약은 첫 언약, 옛 언약.

2) 신약은 둘째 언약, 새 언약.

첫 언약과 새 언약은 약속의 대상이 다르고 내용도 다르다.


(1) 구약 :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인, 그 육적 선민과 육적 이스라엘과 짐승의 피로 세운 언약. 이것을 첫 언약이라고 한다.(출 19:19-24)

첫 언약이 있는데 왜 새 언약을 말씀하셨는가?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히 8:7절)

말씀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약속을 준행하겠다는 이스라엘 선민이 깼기 때문에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흠이 생겼다. 그래서 다시 새 언약을 세우리라. 이는 누구 때문인가? 언약을 어긴 불순종한 육전 선민 때문이다.(렘 31:31-32)

그래서 다시 언약을 세운다. 언약을 했던 육적 선민이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세운 언약이 새 언약이다. 

 

(2) 신약 : 새 언약은 열조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언약(첫 언약)과 다르다.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하시고 600년이 지난 후에 초림 때 예수님을 통해 세우게 된다.

새 언약(둘째 언약)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육적 선민이 아닌 영적 선민(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과 예수님의 피로 세운 언약을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영적 선민과 예수님의 피로 세운 언약(눅 22:20).

약속은 언제 지키는가? 약속은 맺을 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룰 때 지키는 것이다. 이루기 전에 한 것을 예언, 약속이라고 한다. 이룰 때라는 것은 그 예언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 그 약속대로 성취될 때 지켜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룬 것은 구약이다. 그리고 새 언약을 세운다. 예수님은 오셔서 약속을 세우셨고 그 새 언약은 재림 때 이루어진다. 

 

⑶ 요 약

성경은 언약서로 택한 선민과 맺은 약속(예언)이다. 약속(예언)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 언약은 육적 선민과 맺은 약속(예언)이고 새 언약은 영적선민과 맺은 약속(예언)이다. 선민은 약속(예언)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 그 약속(예언)의 내용을 알고 이룰 때에 지켜야 한다. 

 

2. 책 ‘천지창조’를 중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담 때 이후 시대마다 선민과 언약을 해오셨으며, 백성이 언약을 어길 때마다 새로운 목자와 선민을 택하여 그들과 언약하셨다. 그 예로, 아담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을 때는 노아를 택하여 언약하셨다. 아담과의 언약이 첫 언약이라면 노아와의 언약은 새 언약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세계마저 부패한 것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택하여 언약하셨으니, 아브라함과의 언약이 다시 새 언약이 되었다. 이러한 일은 모세, 여호수아를 거쳐 예수님 초림 때까지 되풀이 되었다.(천지창조 p. 177)”


이만희는 새 언약도 다른 언약이 오면 옛 언약이 되어버리고 그 새 언약도 또 다른 새 언약이라는 것이 나타나면 옛 언약이 되어버린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만희가 이와 같은 이상한 주장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도 않은 장막성전의 언약과 자기가 체결했다고 하는 언약을 성경에 등장하는 언약과 동급이라 하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신천지의 언약을 새 언약이라고 함으로써 정통적인 기독교에서 믿고 있는 언약을 이단으로 정죄하기 위함이다.


1)정통(正統)과 새 목자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지으셨을 때 그에게 만물을 맡겨 다스리게 하시며 많은 복을 주셨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배도하였을 때에는 가차(假借)없이 그를 떠나셨다. 그리고 아담의 후손 가운데 의로운 노아를 택하시고 부패한 아담의 후예들을 홍수로 멸하셨다. 아담으로 시작한 세계를 없어지는 처음 하늘(先天)이라고 한다면, 새롭게 창조한 노아의 세계는 새 하늘(後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담은 사명이 끝난 선천의 지도자이며 노아는 새 시대를 인도할 새 치리자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함께하신 아담은 본래 하나님의 진리가 나오는 정통이었다. 그러나 그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떠나신 후에 밤이 되고 낡은 전통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떠나가신 이상 이전(以前)의 정통은 더 이상 정통이 아니다.

아담 이후 사람들은 안일하게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서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 그들은 홍수도 나지 않는데 배를 만드는 노아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조롱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누구의 말이 옳았는가? 하나님께서는 부패한 아담 세계의 모든 것을 물로 쓸어 버리시고, 노아를 세워 다시 창조하고 번성케 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노아의 세계도 곧 흠이 나타났다. 노아는 술에 취해 하체를 드러냈고, 그의 둘째 아들 함은 아비의 수치를 형제들에게 알렸다. 함의 아들 가나안은 노아에게 저주를 받았으며, 가나안의 후예(後裔)는 후일 온갖 우상을 섬기는 족속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 가운데 아브라함(노아의 맏아들 셈의 9대 손)의 후손인 모세와 여호수아를 택하여 가나안 땅을 멸하고 정복하셨다.


하나님께서 부패한 노아의 세계를 떠나 모세에게로 가신 결과, 선천 세계인 노아의 세계는 빛과 생명이 없는 밤이 되고, 후천 세계인 모세의 세계는 빛과 생명이 있는 낮이 되었다. 낡은 선천(先天)과 새로운 후천(後天) 중 어디가 정통이겠는가? 당연히 하나님께서 새로 창조하신 후천 세계이다. 그러나 모세가 애굽에서 이끌어 낸 이스라엘 자손들도 번번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세계를 떠나 예수님에게로 가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가 받아온 율법의 근본 뜻보다 그 형식에 치우쳤으며, 변질된 장로의 유전(遺傳)을 준수하는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면서 예수님을 이단이라 핍박하였다(행24:5). 그러나 참 정통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예수님이셨다. 예수님을 비난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낡은 전통일 뿐이다.


모세로부터 세례 요한 때까지는 부패한 선천이요, 예수님 때부터가 새로운 후천이다. 예수님 초림 때 선천(先天)인 육적 이스라엘은 종말을 맞고 후천(後天)인 영적 이스라엘이 시작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목자들은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복음을 전해 왔다. 예수님께서는 이 하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될 때 영으로(마24:27 참고) 오셔서 약속한 한 목자와 함께 하신다. 구약 성경에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한 언약의 사자 예수님이 예언되어 있듯이(말3:1, 시2:6-7, 사61:1-3, 렘31:22 등),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이 보내는 이 약속한 목자에 관해 예언되어 있다(요14:16-17, 26, 요15:26, 요16:13-15, 계 1:1-3, 계22:8, 16 등).


오늘날 일반 목자들은 유대 제사장들이 예수님께 그러했듯이, 신약에 약속한 목자를 이단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이단이라 하는 것과 같고(요15장 참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는 약속한 목자를 핍박하는 것은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 시대(선천)가 가고 새로운 한 시대(후천)가 올 때마다 이전 세계 목자들은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면서 새 시대의 목자와 성도들을 이단이라고 하며 핍박했다. 이전의 모든 것을 끝내는 주 재림 때는 신약에 약속한 목자와 일반 목자 중 누가 정통이겠는가? 또 빛과 생명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어느 목자에게 있겠는가?

지금 이 시대는 진리를 말하는 사람도 없고, 진리를 찾는 사람도 없다. 현 세대가 캄캄한 밤이 된 사실(요9:4-5)을 깨닫는 사람도 없다. 모두 다 육체로 돌아갔으며, 입술로는 주를 존경하나 자신을 위한 기복(祈福) 신앙에 빠져 있고, 진리를 비진리라 하고 정통을 이단이라 말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에 부패와 횡포가 가득할 때 신부(神父)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고, 수많은 희생의 피 값을 치르고 나서야 개신교(改新敎)가 탄생했다. 그러나 지금의 개신교는 어떠한가? 교회는 갈래 갈래 수백 개의 교단과 교파로 찢어졌고, 목자들은 물질과 권세에 눈이 어두워 서로 비난하며 싸우고 있다. 심지어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그 말씀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증거하는 사람들까지도 이단이라고 정죄(定罪)한다.

이 어찌 옛 가톨릭 교회보다 더 부패하지 않았다고 하겠는가?

이 때 예수님께서 한 목자를 세워 진리를 외치며 개혁을 단행하신다면, 이 시대 목자들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아마도 시대마다 그러했듯이 그를 이단이라고 할 것이다. 성경에 약속한 목자를 손가락질하는 그들이 과연 예수님의 약속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약속하신 목자를 알지 못하여 거짓 목자에게 미혹 받는다면 성경을 상고하는 가치가 없다.


우리 신천지에는 주께서 약속하신 목자가 있다. 그는 예수님께서 펼치신 책에 기록된 말씀으로(계10장)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고 있다(계21장). 예수님께서 하늘의 씨를 뿌린 지 2천 년이 되는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은 이미 끝이 났다. 지금은 알곡 성도를 추수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창조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영육이 함께 사는 영적 새 이스라엘 즉 신천지 시대이다.(천지창조 pp. 153-157)


2). 요 약


: 새 언약의 목자 전(前)의 언약의 목자시대 - 구약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예수            이만희

신약

신약

신약

신약

신약

신약

신약

            구약

               구약

                구약

               구약

               구약

                구약



3. 책 ‘신천지 발전사’를 중심으로


: 구약과 신약에 대한 세 번째 개념. (p.179)(신,발pp.28-30,32,49)

구약 :(유인구)첫 언약

신약 :(이만희)새 언약

동맥을 짤라서 피를 내고 이 피로

언약서를 쓰고 사명장을 줌.

주사기로 이만희의 피를 빼서 이 피로 언약서를 씀.

유인구와 7별이 1966년에 언약을 맺음.

이만희와 7영(7교육장), 1991년에 언약을 맺음.

신천지인과 1992년에 언약을 함.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



Ⅱ. 반 증 - 성경적 주장


1. 한창덕 목사 “신천지 비판교리” 中


1) 어떤 것이 진리라면 그 가르침의 내용이 변질되지 않는 한 진리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어떤 가르침의 내용이 진리냐 아니냐는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옳으냐 그르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성경에는 십계명이 있고 그것을 요약하여 가르쳐주신 것이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이다. 이것이 정통적인 가르침이고 주의 말씀인 진리다. 어느 시대의 성도라도 이 명령을 존중하고 받아들어야 한다. 누군가가 그 말씀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았느냐와 상관없이 십계명이나 그 십계명을 요약하여 가르쳐주신 주님의 말씀은 진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만희는 그 가르침이 옳은지 그른지, 주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로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죄인인지 아닌지,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이상한 잣대를 동원해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하고 이단과 정통을 구분하고 있다. 

 

2) 하나님이 죄인과 함께하지 않으시고 의인과만 함께하신다는 것도 단지 그의 주장일 뿐이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그래서 주님도 “하나님 한 분 외에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8; 눅 18:19)고 하셨다. 죄인은 결국 그 죄 때문에 망하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도 받게 되겠지만 하나님은 죄인도 사랑하신다. 그래서 독생자까지 내어주셨다. 이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셨다. 그래서 그분은 모두가 다 죄인이라며 피하는 세리와도 함께하셨고,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도 용서해주셨다. 그러므로 이만희의 진리와 비진리, 이단과 정통이라는 잣대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3) 이만희는 옛 언약과 새 언약 교리를 통해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복음을 부인하고, 자신을 ‘약속의 목자’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구세주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그 자리에 자신이 앉으려고 한다. 또 자신이 받았다는 계시를 통해 성경과는 ‘다른 복음’을 전파하면서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이단으로 만들고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을 정통으로 추켜세운다.


(1)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은 선지자들이 여러 형태의 예언을 했고, 하나님이 노아와 아브라함 등 여러 사람과 언약을 맺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길이나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 한 길, 오직 예수님을 통한 길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 말씀은 구약에 등장하는 다양한 언약들이 새로운 언약에 의해 폐기처분되고 이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노아 때의 언약이나 아브라함 때의 언약, 그리고 모세 때의 언약 등 모든 언약이 다 정통이며 진리이고, 주님을 증거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 가르침은 한 마디로 이만희의 주장을 “엉터리”라고 꾸짖으시는 것이다.

또 예수님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고 하셨다. 또한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 5:46)고 하셨다. 이만희의 주장대로라면 아브라함 때 맺었던 언약은 모세의 언약에 의해 옛 언약이 되고 모세 때의 언약이 새 언약이 되었으며, 이 둘은 서로 달아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이나 모세 둘 다 예수님과 관련이 있다고 말씀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구약성경에 대한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표현인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이라고 하시면서 구약성경에서 당신에 대해 예언하고 있었던 모든 것이 자신의 부활을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

이만희는 모세오경에 기록되어 있는 아담 언약과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과 모세 언약 등이 서로 다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언약들이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자신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단일한 언약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더군다나 선지자의 글과 시편까지 언급하심으로써 구약성경 전체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의 언약은 모두 다 하나이고, 시대마다 여러 명의 구원자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을 증거한다고 말씀하신다. 즉 시대마다 새로운 언약들이 출현하고 그 언약들이 서로 다른 목자, 서로 다른 메시아를 증거하고 있다는 주장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2) 멸망대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신천지의 이만희는 하나님이 부패한 자들은 멸망시키시며, 구원을 위해 새로운 목자를 선택해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다고 한다. 그러면 새로운 목자와 맺은 언약이 새 언약이 되고 이전의 언약이 옛 언약이 되며, 이와 같은 과정은 반복된다는 것이다. 또 새로운 목자를 통해 새롭게 창조된 세계가 후천이며, 그 이전의 멸망한 세계가 선천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목자가 나타날 때마다 선천과 후천이 반복되고, 옛 언약에 속한 선천이 이단이 되며, 새 목자를 통해 새 언약을 가진 후천이 정통이 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하나님은 범죄한 자들을 반드시 멸해버리셨을까? 성경은 이만희의 주장과는 반대로 가르치고 있다.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수 24:1-3)

이만희의 주장은 배도(범죄)하면 그들을 멸망시켜버리고 새로운 목자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어떤가? 여호수아는 백성들 가운데 유력한 자들을 세겜에 모아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는 가운데 아브라함을 포함한 자기 조상들이 우상을 섬겼으나 멸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불러주셔서 번성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만희는 분명 ‘배멸구’의 노정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이 새로운 목자를 선택하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시며 범죄한 이전 세계를 멸망시킨다고 했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옛 언약과 새 언약, 선천과 후천, 정통과 이단이 반복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멸망이 마땅한 자리에서 멸망이 아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그 하나님은 결국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주셔서 그분을 대속제물로 삼아 죄인을 구원하셨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며, 하나님의 사랑이다.


2. 성경적인 개념 : 언약(구약과 신약)


1) 언약에 대한 이해

‘언약(Covenant)’으로 번역된 구약성경의 히브리어는 ‘베리트(beriyth)’이다. 헬라어로는 ‘디아데케(diatheke,διαθήκή)’다.

이 둘은 모두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과의 언약이 동등한 두 당사자 간에가 아니라 우월한 존재와 종속적인 존재 간에 맺어진 것으로 성경의 언약은 동등한 쌍방 간의 약속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하신 약속에 근거하여 수립되는 것이다. 즉 성경의 언약들에서 언약의 조건을 정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이 약속의 대상도 스스로 선택하신다. (예, 하나님은 이스라엘인들을 택하셨고 블레셋인들을 택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언약 관계에 들어가면서,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 26:12)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인들이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바였다.)


우리가 언약이라는 개념을 반드시 고수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이 자기의 계획을 계시하기 위해 놀라운 사랑과 은혜와 겸손하심 가운데 선택하신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불러 내셨으며 그들과 협정을 맺기로 하셨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반역과 죄와 교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불러 내어 “나는 너와 협정을 맺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약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인자하심과 겸손하심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은혜 언약이라 할 수 있다. 은혜 언약에서 하나님이 주신 가장 중심 되는 약속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입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것은 성경 전체에 걸쳐 수 없이 반복되는 위대한 약속이다. 렘 31:33; 32:38-40, 겔 34:23-25; 36:25-28; 37:26-27, 고후 6:16-18, 히 8:10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은혜의 언약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정수는 죄와 타락으로 인해 깨어졌던 것들이 회복되리라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2) 언약의 기원

우리는 성경의 언약 개념에 대한 기원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예를 고대 근동세계에서 사용했던 종주와 속주의 계약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과 유다의 시드기야(왕하 25:1-30), 앗수르의 살만에셀과 사마리아의 호세아(왕하 17:1-6) 등이 실제적으로 종속관계의 계약을 맺고 있었으며, 하나님과 아담(창 1-2장), 여호와와 이스라엘(출 19:1-6; 24:1-11), 여호와와 유다 왕들의 관계가 종주와 속주의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성경은 이 관계 속에서 역사의 흐름을 기술하고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속주와 신민들의 관계가 계약적 연대성을 형성하여 속주의 종주에 대한 충성도의 여하에 따라 속주의 신민들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속주가 종주에게 충성하면 속주의 신민들은 그 속주와 함께 평화를 누리고 복을 받지만, 속주가 종주에게 반역을 할 경우 신민들은 속주의 반역적 저주를 함께 받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과 자신들의 관계를 우리 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가까운 관계를 빗대어 은유로 표시한다.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아들, 경우에 따라서는 목자와 양, 왕과 백성 등이다. 고대 근동 세계에서는 결혼이나 입양, 혹은 왕과 백성 사이에도 계약을 맺었다. 이러한 계약을 맺을 때는 당사자 간에 계약서를 작성하고 일정한 의식을 거행했다. 계약식을 가진 것이다. 성경은 바로 인간들이 사용하는 이러한 제도와 양식을 빌어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고 기술한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고, 너희는 내 백성이다.” 혹은 “너는 내 아들이고 나는 네 아버지이다.” 등의 언약공식은 그 기원과 배경이 고대 근동 세계의 결혼 공식, “나는 네 남편이요, 너는 내 아내이다.” 혹은 “너는 내 아들이요, 나는 네 아비이다.” 등의 친족 맺기 공식으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언약 사상의 기원과 배경은 고대 근동의 국제정치 제도와 친족 맺기 풍습이라는 두 전통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근동 조약들은 ‘종주권 조약’으로 불렀다. 주군은 우세한 측인 반면에 봉신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측이었다. 주군은 봉신들이에게 충성 맹세를 요구할 권한을 지녔고, 그 대신 특정한 유익과 보호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그들에게 곡식을 제공하거나 그들이 지원을 요청할 때 군대를 파견할 수도 있었다. 그 대가로 봉신들은 주군에게 충성을 서원했던 것이다.

※ 조약들의 요소

첫째, 전문에서 주군이 자신의 신원을 밝혔다.

둘째, 역사적 서언에서는 주군이 과거에 봉신에게 제공해 온 유익들을 열거했다.

셋째, 조약들의 조건들에서 주군은 봉신들에게서 기대하는 것과 그들에게 주기로 약속하는 것들을 밝혔다. 또한 조약을 위반한 측에 내려질 제재나 징벌을 명시했다.

넷째, 조약을 필사하여 주군과 봉신 각자가 하나씩 보관하며, 그 조약을 새롭게 해야 할 경우에는 이따금 공개석상에서 봉독한다는 규정이 기재되었다.


3). 옛 언약

우리가 일반적으로 옛 언약이라고 말할 때는 모세의 중재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을 일컫는 말이다. 모세 언약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고대 근동의(조약들의 요소)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첫째, 전문 : 출애굽기 20장은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라는 전문으로 시작한다.

둘째, 역사적 서언 :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셋째, 조약의 조건 : 십계명은 고대 근동 조약의 ‘조건들’에 해당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요구 사항들을 제시하시는데, 그 내용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로 시작한다. 하나님이 이들 조건을 당신의 백성에게 주신 것은 그들로 당신과의 언약 관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받은 특권을 보유하며 언약 관계에 계속 머물러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따라서 율법준수는 은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순종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다


(1). 언약의 제의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그의 언약의 파트너 아브라함(창 15장)의 후손,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해 내어 시내 산으로 데리고 와서 특별한 관계를 맺고자 제의하신다.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4-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제의하신 내용은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면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민족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2)

선지자 예레미야는 시내 산 언약을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결혼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살이로부터 해방시켜 시내 산으로 데려와서 언약을 맺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남편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아내가 되는 것이고, 이 언약식은 바로 결혼식이었다. 고대 근동세계에서 결혼은 계약이며, 결혼 때에는 반드시 계약서를 썼던 풍습을 염두에 둔다면 시내 산의 언약식은 바로 결혼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의 소유로 삼으시겠다는 제의는 이스라엘을 그의 아내로 맞이하여 부부의 관계를 맺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특별한 사랑의 관계를 맺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신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소유의 백성,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관계를 제의하시고 이 관계를 깨어버리거나 변개치 못하게 법적인 구속력을 갖도록 계약을 맺자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여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겠다고 응답하였다. 이 제의는 사실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의 구출 작전을 시작하시며 “내가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다”(출 7:6)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 제의를 받아들였고, 하나님께서는 돌판에 그의 계명을 새기고 그 위에 짐승의 피를 뿌려 언약을 맺었다.


(2). 언약의 내용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사랑의 관계를 견고하게 하는 언약을 피로 맺으셨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때처럼 짐승을 잡아 가운데로 쪼개고 그 사이로 언약 당사자들이 자기들의 생명을 담보하고 지나가는 식으로 맺은 것은 아니지만 피를 뿌린 것은 하나님이나 이스라엘이나 다 같이 생명을 담보하고 언약을 맺었다는 그 기본적인 정신은 유사하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고자 성막을 짓도록 명하신다. “그들이 나를 위해 성소를 지어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게 하라.”(출 25:8)고 명하신다.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막에 충만하게 임하였다(출 40:34). 성막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는 증거요 상징이었다. 하나님의 그의 사람들과 함께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여호와와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이 일종의 결혼 예식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는 마치 신랑과 신부가 결혼 예식을 마치고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동거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사랑의 대상을 이스라엘로 삼으시고 그들과 항상 함께 교제하시기를 원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막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며 교제하는 곳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와 더불어 교제하는 데는 일정한 절차와 법도가 필요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랑의 관계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일정한 질서가 있고 서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십계명이 바로 그 근본 도리이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가지려면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4). 새 언약

(1) 새 언약에 대한 약속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새로운 언약을 맺을 것을 약속하신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1-34)

여호와께서는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이 여호와 자신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이 결혼 언약이었으며, 시내 산 언약으로 결혼 관계에 들어갔음을 주지시키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이방신을 섬기고 이방 나라를 의지함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시지만 새로운 언약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새 언약은 옛 언약과는 달리 돌판에 기록하셨던 언약문서를 사람들의 마음 판에 기록하여 영영 깨어지지 않고 잊어버리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옛 언약과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에스겔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6)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27)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8)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 37:26-28)

여호와께서는 화평의 언약이라는 언약을 새로 맺어 그것이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할 것인데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 가운데 영원한 성소를 두어 그들 가운데 영원히 거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뿐만 아니라 열국의 백성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새 언약은 온 세상 사람들과 평화를 나누는 영원한 언약이 되며 영원히 함께 교제하며, 영원히 함께 거하는 언약이 될 것이다.


(2). 새 언약을 맺으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3년 동안 그의 제자들과 함께 거하시며, 무리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 도리를 가르치셨다. 말하자면 예수께서는 새 언약의 선지자들을 양성하시며, 다른 한편으로는 새 언약의 백성들을 모으는 일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저녁을 잡수시며 그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시며 새 언약을 세우셨다(눅 22:14-23).

예수께서는 유월절이 다가오자 큰 다락방을 예비하시고 제자들로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게 하셨다. 시간이 되어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식탁에 앉히시고 인사 말씀과 더불어 잔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하셨다(눅 22:15-18). 그리고 빵을 들어 감사기도하신 후에 그들에게 떼어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19) 말씀하셨다. 그리고 저녁을 드신 후에 잔도 그같이 하시며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20)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제자들과 함께 나누는 유월절 성만찬 의식이 새 언약을 제정하는 의식임을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이 새 언약을 세우시며 하시는 말씀 가운데 누가는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라고 적고 있지만 마태와 마가는 “죄 용서를 얻도록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마 26:28; 막 14:24)라고 말씀하신 걸로 기술하고 있다. 예수께서 흘리실 피에 대하여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적인 피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가 흘리게 되는 피에 대하여 대속적인 의미와 언약적 의미가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속죄의 피만을 흘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하나님의 영원한 화해와 교제를 위한 언약의 피를 흘리신 것이다. 십자가에 메달리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죄인들이 그들의 적대감을 버리고 화해하고 화평하게 살 것을 맹세하는 언약식에서 그들의 생명을 담보하기 위하여 그 몸을 쪼개 벌여놓은 짐승의 몸과 같은 것이다. 시내 산의 옛 언약에 비하면 이 새 언약은 모든 것이 장엄하고 비장하다. 유월절 만찬석상에서 제자들에게 그의 살과 피를 주신다고 하신 새 언약이 십자가상에서 실현되고 발효되는 것이다.

(3). 언약의 내용

시내 산 옛 언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여호와를 몸과 마음과 정신과 힘을 당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시고 그것을 돌판에 새기셨다. 이제는 예수님께서도 새 언약을 공포하시며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요구하신다. 제자들 간에 사랑의 관계성을 갖도록 명하신 것이다.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이나 그 본질은 관계이며, 교제와 사랑이다.

5). 결 론

언약이란 신천지가 주장하는 미래에 대한 예언(약속)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은혜다 그래서 은혜의 언약이란 삼위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이루어진 협정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사귐을 약속하셔서 자신의 영원하신 뜻과 구속의 작정을 수행하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약속은 언약의 중보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속죄에 근거하여 자신의 백성을 온전히 그리고 값없이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은혜의 언약은 하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시며,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며,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됩니다.

고대 근동세계에서는 양떼나 가축의 떼들은 가장 귀한 소유 재산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 보통 아내들은 남편의 소유로 여겼다. 이때 아내들은 가축이나 종들과 같은 소유는 아니고 이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소유이다. 아내는 가축이나 종들처럼 팔거나 죽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의미의 소유이다. 그래서 남편을 “소유자” 혹은 “소유주”라고 한다. 아내의 원래 소유자는 친정 아버지였다. 신랑은 아내의 아비에게 가서 신부값을 지불하고 그의 딸을 자기의 아내로 삼아 그의 소유주가 된 것이다. 따라서 여자의 경우는 결혼을 통해서 그의 소유주가 아비에게서 남편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이 어휘가 신학적으로는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는 관계어로 사용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자기의 “세굴라” 곧 소유로 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을 자기의 신부로 삼으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31:31-34에서 새 언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하나님의 소유” 혹은 “소유의 백성”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밀접한 사랑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한다는 말은 이스라엘을 열국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열국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사를 드리는 대제사장적인 신분을 갖는 백성이 된다는 말이다. 후에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이러한 역할을 할 것을 예언한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사 61:6, 개정)

또한 “거룩한 민족”은 “구별된 민족”이라는 의미이다. 히브리어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세상만민 가운데 그의 백성으로 특별하게 구별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구별하셔서 하나님의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방인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언약의 개시

떡과 포도주가 자신의 몸과 피를 각각 가리킨다고 하면서 새 언약을 선언하셨다. 이것이 새 언약의 개시였다.

다음 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그 언약을 비준하셨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완벽하고 단 한 번인 희생의 수혜자인 모든 이들을 위한 새 언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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