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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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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명 목사 약력 | 예수교회 노들강변 2007.02.11 09:49

http://blog.daum.net/jesuschurch1933/11085095


한준명 목사님이 1999년 1월 17일(나는 18일로 기억하는데 미국 시간과 우리 시간이 다르니 17일 이 맞겠지요) 만 92세로 이 세상과 작별을 하셨습니다.

 

간략하게 약력을 알려 드리면  

 

1907년 대구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경주에서 보내고 삼일운동 때 간도로 이주하였다고 합니다. 부친은 한의사로 대구 장로교회의 첫 교인들 중 한 사람이었고 구세군 대구영문의 개척자였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명동학교를 나오고(경주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다가 간 것 같음) 은진중학을 나왔습니다.


1926년부터 30년까지 모교인 명동학교에서 교사를 하였습니다. 이 때 한준명 교사의 제자들 중에 윤동주 송몽규 김정우 문익환 등이 있습니다. 명동학교가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는 와중에 학교를 지키려 했던 한 교사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의 권유로 1930년 연말 원산으로 왔습니다. (이듬해 가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에서 중국 세력을 몰아내고 만주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세웠습니다. 만주 중국본토 연해주 시베리아 어느 곳도 한국인들이 편히 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원산에는 그의 누나 한의정 씨가 전도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의정 전도사의 남편은 간도에서 독립군으로 나갔다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원산에서 마르다윌슨여자성경학원을 나와 전도사로 일하는 중이었습니다. 한준명은 원산에서 장로교 조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1931년 마르다윌슨  성경학원 백남주 교수를 만났습니다.(누나의 소개로 만났을 것입니다. 백선생은 1930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원산에 왔습니다. 함남 갑산군 출신으로 히브리어 헬라어를 잘 하였습니다. 성서에 대한 이해와 영계에 대한 관심이 깊은 두 사람은 그래서 서로 친애하고 존경하는 벗이 된 것 같습니다. 백남주가 여섯 살 연상) 


이 시기에 선다싱의 글을  통해 스베덴보리의 이름을 알게 되고 천계와 지옥 신지와 신애 신려론 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또한 원산의 여신도 몇몇 사람에게 나타난 신령발현- 입류라고 이름을 붙인 일종의 영언 현상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이들 중 이름난 사람이 유명화 씨입니다)  


1931년 여름에 원산에 온 이용도 이호빈 목사들을 만났습니다.(이용도 목사가 스베덴보리의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원산에서 한준명 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해 가을 삼방에서 집회를 하였을 때 평양기도단의 김교순 김지영 김익선 들이 참석하여 원산의 백남주 한준명 박승걸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예수교회라는 새 교회가 설립될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였습니다)


1932년 여름에 새생명의 길을 펴냈습니다. 그 해 11월 초에 평양기도단의 집회에 한준명 조사가 이용도 백남주 양인의 추천을 받아 평양에 강사로 갔습니다. 이 집회에서도 입류가 나타났고 이로말미암아 평양노회가 관련자들을 각 노회에 조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기독신보가 이세벨의 무리라고 하며 평양기도단 원산여선지파 황국주일파 무교파주의자들을 지목하였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12월 19일 경성교역자회의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1933년 9월 예수교장로회 22차 총회에서 이용도 한준명 백남주 이호빈 등 예수교회 설립 관련자와 간도에서 와서 새예루살렘 순례를 한다고 전국을 돌아다닌 황국주를 이단으로 간주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한준명 목사는 이단이 된 것입니다)

 

1933년 1월 2일 저녁 한준명 조사 댁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내일 새벽 3시에 광석동 백남주 선생 댁에서 모이라는 명령을 받았고   1월 3일 새벽 3시 예배 시에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영계의 심판을 보여 주는 신령드라마가 펼쳐지고....예수교회로 이름을 지으라는 신칙이 내려왔습니다.(이 집회에서 대언을 한 사람은 유명화 씨 한 사람이 아니고 몇 사람이 더 있었다고 하는데 그 집회의 상황은 이모세 목사의 회고록에 기록된 것 이상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예수교회는 하나님의 가슴에서 인생의 마음을 거쳐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1933년 6월 7일 공의회에서 이용도 목사를 포교소관리자 겸 선도감으로 선출하였습니다.

 

한준명 조사는 장로교단에서 나와 예수교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원산 광석동에는 백남주 목사가 담임한 원산예배당, 덕원군 적전면 송흥리에는 한준명 신치정 복음사의 송천예배당, 문천군 문천면 교월리에는 박승걸 이용준 전영기 복음사의 문천예배당이 문을 열었습니다. (해방 전 예수교회는 평안남도; 평양부 평원군 안주군 성천군 대동군 강서군 용강군 황해도; 해주부 벽성군 송화군 연백군 강원도; 이천군 경기도; 경성부  등지에 30개 가량 있었습니다. 교인 수는 약 2000여명)

 

한준명 목사는 복음사 시절부터 예수교회 중앙선도원의 교육부 임원을 하였고 원산신학산 교수, 예수교회 동기성경학원 강사로 활동하였습니다. 당시 예수교회 교역자들은 무보수 봉사 원칙으로 목회를 하였기 때문에 한 목사는 양 닭 오리들을 쳐서 가계에 보탰다고 합니다.


1941년  일본 서궁시 관서학원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예수교회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이 기간에 선도감 이호빈 목사는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등 황국신민정책에 반대를 하여 일본에 와서 관서신학교와 성화신학교에 유학하였습니다.  한의정 복음사도 요코하마 여신학교 교리츠신학교를 유학하여 졸업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 통치가 끝날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늘 정치세력과 긴장과 갈등 속에 지내야 했습니다. 이 기간에 중앙선도원은 주로 박재봉 목사 한의정 복음사들이 지켰고 이호빈 목사는 돌아와서도 요시찰인물이라 안주 목장에 은거하여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혀 교회 행정에 힘쓰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

 

해방 후  예수교회 임원들이 월남을 하였는데 한준명 목사는 원산에 남았습니다.(이호빈 목사는 유붕렬 복음사의 재정 지원을 얻어 성도중학을 설립하였으나 공산당의 방해로 실패하였고....조선민주당 위원33인 중에 예수교회의 이호빈 전영택 박선관 이종현 4인이 있었습니다. 조민당이 공산당에게 흡수해체되고 고당 조만식장로가 연금되면서 간부들은 월남을 택하였습니다. 이호빈 목사는 서울에 와서 중앙신학원을 설립하여 육영사업을 개시하였습니다. 한편 서울 흑석동에 자리잡은 이조근 집사는 한강예배당을 개척하였고 그 아들 이정선 씨가 한국신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4월 목사가 되었습니다) 

 

한준명 목사는 1950년 전쟁 발발 닷새 뒤 7월 1일 정치보위부원에게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원산 교화소에 구속되어 있다가 유엔군이 원산을 수복하기 1-2일 전 10월 8-9일 사이에 동굴에서 300여명을 총살하는 현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왔습니다.(그 전에 이미 수백 명을 살해하였고 동굴에서 죽인 사람들만 계산한 것임. 6명이 생환하였다고 함)

그의 누나 한의정 복음사는 반공활동 혐의로 전쟁 전에 구속되어 있다가 평양 탈환 3일 전에 후퇴하는 공산당들이 죄수들을 처형하고 갔는데 그 때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예수교회 교역자 중 월남하지 못하고 북한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전쟁 시에 거의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평양의 박명대 목사. 한의정 복음사. 안주의 주선행 복음사. 용강의 김태은 목사. 해주의 진하룡 목사. 숙천의 임학봉 목사 등...그외에 교역자와 교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지?)

 

1950년 겨울 유엔군 철수 시에 월남하여 부산 연희대학과  중앙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신학과 독일어 강의)...서울에서 중앙신학교 교수 학감 교목을 역임하고 70년대에 은퇴하였습니다. 은퇴 후에 예수교회 제일예배당에서 원로목사로 추대하였습니다. 미국 가시기 전 몇 년 동안 상도동에서 예수교회를 일으키려고 노력하셨습니다.(상도동 가정교회는 후에 공의회 소속 교회에 합하였다고 함)

 

*한국 개신교계에서 한준명 목사를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원산여선지파의 일원으로 평양기도단 집회에 강사로 왔을 때 일어난 신령현상을 주도하였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것을 놓고 75년이 되는 지금까지 이용도 목사에 대하여 논하는 글에서 한번 언급하고 지나가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그분을 소홀하게 대접할 수 없습니다. 한준명 목사님은 예수교회의 교리적 신학적 기초를 놓은 분이고 예수교회를 끝까지 지키다가 세상을 떠난 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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