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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도 (여) 한국기독교 이단 원조



김성도

(새주파 김성도의 성주교회)


1. 김성도의 생애


김성도(金聖道 여)는 1882년 음력 7월1일에 태어나 만17세 때에 평안북도 철산군 부서면 장좌동 457번지의 정항준(당40세)과 결혼했다.

정항준은 다섯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나 철산에서 벼슬도 했고,재산도 있었는데 결혼을 두 번이나 했으며 김성도보다 27세 연상의 사람이었다. 첫 부인에게서 딸 하나가 태어났고,둘째 부인에서는 아들 둘이 태어났으나 모자랐던지 친척의 강요에 따라 대를 잇기 위하여 김성도에게 새 장가를 들게 되었다.

대를 이을 아들을 고대하다 김성도가 낳은 첫 아이는 아들이었으나 일 년 만에 쇠고기 먹은 것이 체해서 죽고 말았다. 첫 아이는 밤에 죽고 둘째인 딸은 그 이튿날 새벽에 태어났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딸 쌍둥이를 낳고 1906년 6월 25일에야 둘째 아들 정석천(鄭錫天-현재 통일교인)을 낳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들을 낳고 나서 김성도는 일종의 정신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집 안에서는 김성도의 정신 이상 증세를 고치기 위해서 무당을 부르고,병원을 찾는 등 여러 가지로 애를 썼으나 별 차도가 없었는데,노권사라는 전도 부인이 와서“이 병은 예수를 믿어야 낫는다”고 일러주어 그때부터 교회를 나가기 시작해 약 3개월 뒤에 정신 이상증세가 완치되었다. 정석천은 그때 모친 김성도의 나이가 33세였다고 전한다.

이로부터 일년 뒤 아들 정석천이 병이 들어 기도로 낫게 되자 이것이 계기가 되어 김성도는 돈독한 신앙심을 갖게되어 정식으로 입신(入信)하였다. 그러나 남편 정항준의 가문(家門)은 대대로 유교 가문(家門)인 까닭에 아내의 기독교 신앙을 못마땅히 여겨 모진 박해를 가했으며 그녀에게 심한 구박을 가하던 남편 정항준은 만61세로 김성도의 결혼 17년만에 사망하였다.


2. 김성도의 입신 체험과 신비주의 운동


1919년 한반도 전역에 걸쳐서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김성도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기도하라는 하늘의 계시를 받아 열심히 기도하였으며 1922년에는 세계교회를 위해 기도하던 중 입신(入神)하여 여러 가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당시 김성도의 집은 규모가 여섯칸이나 되는 미음(ㅁ)자 형의 아주 큰 집으로 안방과 건너방,사랑채,곳간,그리고 큰 홀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게 되면 역사가 벌어지고 병도 낫게 되었다고 한다. 통일교 역사 편찬위원회가 편찬한『꿈에그리던 주님을 뵈옵고』(1986. pp. 155~184.)에 나타난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의 부인 한학자의 모친 홍순애의 증언에 따르면,“김성도 여인은 보통 말할 때에는 새색시같이 가만 가만 말하지만 기도할 때 보면 어떤 남자 못지않게 아주 우렁찬 음성으로 기도함으로 모든 사람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고한다.

김성도의 손자가 부친 정석천으로부터 들어서 기억하고 증언한 바에 따르면,“김성도는 1923년 음력 4월 2일 입신하여 천군 천사들을 만났고 그때 예수와 나눈 대화속에는 ‘죄의 뿌리가 음란이라’는 이야기가 있었고,지상인들의 불신 때문에 예수 자신이 억울하게 죽었으니 교회당에서 십자가를 떼어내는 운동을 전개하라는 당부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열흘 뒤인 음력 4월 12일에는 예수와의 두 번째 면담이 있게 되었는데 이때 예수로부터 재림 주님이 육신을 쓴 인간으로 한반도에 온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때의 대담 내용들은 길이 2m 폭 30cm의 종이 12장에 기록하여 놓았는데 그 내용을 보면‘죄의 뿌리에 대한 시각’,‘십자가에 대한 시각’,‘육신입은 재림론’ 등은 오늘날의 기독교계 이단종파들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단골 메뉴다. 그 뒤에 김성도는 또 입신하여“때가 급하니 속히 세상에 널리 알리라”는 계시를 받고 담임 목사에 보고 했더니 사탄의 역사로 돌리면서 자제하라는 지도를 받았다. 그러나 이런 신비체험에 대한 소문이 교회에 나돌아 교우들이 그녀에게 자주 찾아오게 되자 1925년 교단으로부터 책벌을 받아 출교되었다.

1931년 2월에는 딸 정석현에게“새 주님이 나타났으니 회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신탁(神託)이 내려 온 가족이 사흘동안 금식하며 참회 기도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가족들은 하늘로부터 기도를 받음으로써 생명의 자유를 찾는다고 믿게 되었고,계시를 통해서 받은‘감사의노래’를 부르면서 새 주님이 이땅에 오심을 찬양하였다. 그 노랫말에 보면“생명의 자유를 찾았으니 감사합니다”라는 식으로“감사합니다”라는 말이 13번이나 나오고“기쁘고 감사하다 새 주님 오셨다”는 식으로“새주님 왔다”라는 말이 3번이나 나온다. 이래서 항간에서는 김성도를 따르는 무리들을「감사교」,「감사패」,「새주파」라고 부르기도 했는데,손자 정수원의 회고에 의하면“어린 시절에 친척과 동리 사람들로부터‘새주(主) 새끼’로 불리웠다”고 한다.

당시 장좌동 현지를 목격한 사람 김선환의 회고에 따르면,“평북 철산에 김성도라는 권사가 있어 병 고치는 은혜를 받고 많은 병자를 고쳐 주었다. 사방에서 많은 병자가 모이므로 기도를 받으면 즉석에서 마음이 감동 되자 권사란 명칭을 부르지않고‘새주님’이라고 불렀다. 이 새주는 자기 앞에 十二 제자를 두고 기도 끝에도‘새주님’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했다. 그들은 남녀가 한 자리에 모여서 ‘역사 역사 새주님 역사 진주문에 들어가서 새주님 만나자고 야단 법석을 한참 한다. 이것이 끝나면 새주는 성신을 부어줄 터인즉 입들을 벌리고 기도하라고 한다. 새주가 냉수를 입에다 뿌려 주면 그 냉수를 받아 먹느라고 큰 소동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새주의 입에서 나오는 냉수를 받아먹는 것이 성신(聖神)을 받는 줄로 믿었다. 이런 집회의 열기가 계속되자 경찰에서 간섭하기 시작하였는데 누구든 김성도의 집을 방문하러 오는 사람은 부서면 面소재지에 있는 경찰지서에 신고를 해야만 하기도 했다.


3. 성주교 창립


관(官)의 감시가 심해지는 가운데 1932년에는 이용도,백남주,이호빈 등이 김성도의 집에서 접촉하게 된다. 이런 왕래를 시발로 1933년 10월에는 새주파가 원산의 한준명,백남주,이용도의 예수교회에 합류하게 되었다.

『예수』지 제5호(1934년 5월호)통신란(p.33)에는 “평북 철산군 부서면 장좌동 장좌 예배당은 1933년 10월 3일에 개천식을 거행하였고 김성도 녀사와 정석천 복음사가 무수한 핍박속에서 희생적 수고를 거듭하고 있으며 그간 백남주 목사와 리종현 복음사가 일주일식 삼차 집회가 열렸고 지난 三월 一일부터 八일까지 리호빈 목사와 한의정 복음사를 청하여 부홍회를 여러 은혜가 풍성 하였으며 근지(近地) 참석한 사십(四十)명 교인까지 충만한 기쁨을 얻고 도라 가섯다. 교인수는 -백 三十명 가량이며 금번 집회에 신신자수는 五명이라 한다”고 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김성도의 아들 정석천이 예수교회의 전도사격인 복음사로 임명을 받은것과 당시 의새주파 교인 수효가 130명이라는 사실을 찾아 볼 수 있다.

1935년 들어 새주파는,예수교회의 창립 주역이였으나 이른바‘천국 결혼’(제3절 원산의 새교 - 6. 천국혼인잔치 참조)사건으로 원산의 신학산에서 쫓겨난 백남주 목사를 새로 맞아들이게 된다. 그의 뒤를 따라서 그의 제자 김백문과 김남조도 왔다. 이때부터 새주파는 예수교회와의 관계를 끊고 1935년 10월‘성주교(聖主敎)’ 라는 간판을 달고 김성도의 아들 정석천을 대표로 한 종교 단체로 조선총독부 총무과에 정식 허가를 받아 등록한다. 이렇게 해서 설립한‘성주교’창립 예배 사회는 김백문이 맡았다.

관청의 허가를 받고부터는 장좌동 외에도 안주,평양과 정주,숙천,해주,서울,원산 등을 포함하여 약 20여 군데 집회소가 더 생겨났다.『기독교 대연감』(1992년 기독교문사 刊)이 일제 총독부 자료(1925~1940년)을 인용해 발표한‘해방전 북한교회 통계’에 의하면 성주교회 현황은 교당 수효가 평남 8, 평북 5, 함남 2, 함북 3으로 기록돼 있고,교직자 수는 평남 8, 평북 3, 함남 3, 함북 4, 신도수효는 평남 94, 함남 28로만 나타나 그 외 지역에는 교인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종교관련 잡지중의 하나인『신앙생활』에서 발행인 김인서는(註 당시 장로. 후일 목사 안수를 받았다)“제군이 새주 교회를 시인한 이상 새主之子 鄭복음사 평양 새교회에서「새주역사」란 주문을 고창 선전함은 당연한 일이오 제직과 교인이 새역사에 열광한 것은 정한 일이다. 이리하여 새주창파,새주불창파로 파쟁이 생기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4. 성주교의 주요 교리


김성도의 아들 정석천의 증언에 의하면 김성도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➀ 죄의 뿌리는 선악과라는 과일을 따먹은 것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남녀 관계가 원인이 되어 나타났다. 즉 음란이 타락의 동기가 되었다.

➁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돌아가시지 않고 뜻을 이루어야 한다.

➂ 하나님께서 2대 슬픔을 갖고 계시는데 그 첫째가 아담이 타락하는 순간을 아시면서 간섭하시지 못하시고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으셨던 슬픔,둘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서 이루셔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을 보시는 슬픔이었다.

➃ 재림주님은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몸을 통해 오신다.

➄ 재림주님은 한국으로 오시며 만인이 한국을 신앙의 종주국으로 알고 찾아오게 된다.


세계 기독교통일신령협회 역사 편찬위원회는 문선명의 설교를 인용한『사보』에서 157호 p.4l.) 그녀가 하늘로부터 받았던 중요한 계시를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다.


   1. 일본으로부터 한국의 해방.


2. 재림주님은 한국으로 오실것인데 구름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육신 쓴 한 인간으로 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한국인이다.


   3.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과일이 아니고 타락은 사랑의 행위였다.

즉 타락은 사랑의 행위였다. 즉 타락은 사랑의 잘못으로 일어났다.

4. 남자와 여자는 결흔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결혼은 참된 결혼이 아니라 거짓 결혼이기 때문이다.

5. 주님은 새로운 혈통을 세우려고 오신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님을 영접하려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몸은 정결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성생활이 있어서는 안된다.


통일교 기간지인 월간『통일세계』는“김성도의 가르침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면서 홍순애의 증언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간추려 소개하고 있다.


“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죽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섭리는 연장된 것이다.

⓶ 인간의 타락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것이 아니라 아담과 해와의 잘못된 성생활,즉 음란으로 타락했다.

⓷ 재림 주님은 구름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어느 여인의 몸을 통해 육신으로 한국에 태어날 것이며 한국이 에덴동산이 된다.


김성도가‘죄의 뿌리가 음란’이라고 보게 된 것은 그녀의 출석교회 담임 목사가 남녀 문제로 구속되자 충격을 받고 죄에 대하여 깊이 파고드는 기도를 하다가“이제까지 너만큼 죄의 뿌리를 알려고 애쓰는 자가 없었다”고 하며“죄의 뿌리는 음란이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 때문이며,주님은 육신 쓰고 한국으로 오신다”는 등의 환청을 들은데 있다. 여기서 정득은의『생의원리』와 김백문의 대한기독교 청수교회의『기독교 근본원리』,통일교의『원리강론』, 변찬린의『성경의원리』등의 내용이 김성도의 가르침을 전승한 것들 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5. 성주교의 수난과 종말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이어 1940년대에는 창씨 개명이 강요되기 시작하였고,전쟁용 물자 공출,징용,징병 등이 강행되면서 자생종교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할 무렵,강진 출신 김영수라는 청년이 성주교에 와서 은혜를 받고 전도하다가 성주교인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오고 가던“머지않아 일본이 망하고 해방되어 큰 복을 받게 된다”는 등의 계시 내용을 전도하면서 사람들에게 말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중 한 명이 경찰 고등계 형사의 정보 요원이었다. 이 사람은 성주교회의 일주일 집회를 참석하고 돌아가 들은 내용을 도경(道警)에 보고 했고,이 때문에 1943년 가을 김성도와 두 아들 정석천과 정석전과 10여명의 중심 신도들이 경찰에 연행되게 되었다.

김성도는 심한 고문을 받고 3개월 만에 풀려났으나 1944년 4월 1일 만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아들 정석천은 재산의 일부를 정리하여 그 해 6월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에 있는 광산 하나를 인수하여 광산업에 손을 대게 되고 장좌동 집회소는 방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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