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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 이단들의 비유풀이 2




이단들의 비유풀이 2


이인규 

dsmedic@naver.com


     

4) 비유의 목적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 13:34-35)


마태복음 13장 13-15절 뒤에 있는 34-35절을 보면,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가 언급되는데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입을 열어서 비유로 말한 것”에 대해서 신천지는 시 78:2을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신천지는 시 78:2을 반대의 뜻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시 78:2-3)


즉 신천지는 시 78:2을 통하여 성경이 감추어진 비밀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나 신천지의 주장과 달리, 시 78:2의 다른 번역성경을 보면 “숨은 뜻을 밝혀준다”고 번역하고 있다. 즉 성경은 “비밀을 감추어진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밝히고 드러낸다”는 뜻이다.


[공동번역] 내가 역사에서 교훈을 뽑아내어 그 숨은 뜻을 밝혀 주리라.

[표준새번역] 내가 입을 열어서 비유로 말하며, 숨겨진 옛 비밀을 밝혀 주겠다.

[현대인의성경] 내가 비유를 들어 옛날부터 감추어진 것을 말하겠다.

[KJV] I will open my mouth in a parable: I will utter dark sayings of old:

[NIV] I will open my mouth in parables, I will utter hidden things, things from of old



이단들은 ‘비유’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모르는 것 같다.


‘비유’라는 단어는 ‘파라볼레’라는 헬라어가 사용되었는데, ‘파라’는 ‘옆에’라는 뜻이며 ‘볼레’는 ‘발로’라는 단어의 파생어로서 ‘던지다, 놓다’라는 뜻으로 ‘옆에 던져놓다’는 의미이다. 즉 ‘파라볼레’라는 단어의 의미는 ‘평행, 병렬’(parable) 이라는 뜻으로, 그 원래의 개념은 “어떤 사물의 옆에 나란히 던져 놓음으로서 두 개를 서로 비교하게 하여 그 의미를 깨닫게 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비유의 목적은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깨닫게 하고 알게 하는 것에 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 13:10-12)


성경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책인가? 성경은 감추기 위한 비밀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자들은 누구든지 그 뜻을 깨닫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책(딤후 3:15)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멧세지를 기록한 책이다.


4가지 밭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좋은 밭’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마 13:23)라고 해석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만약 성경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비유를 직접 해석하여 준 것을 기록하지 않았거나, 아무도 그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였다면, 성경은 비유를 감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마13장 뒤에서 비유를 마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비유말씀을 깨달았다고 답한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마 13:51)



5) 계시



성경은 곧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다. 그런데 계시라는 용어를 이단들은 마치 ‘감추어진 비밀’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


‘계시’(revelation)라는 단어는 헬라어 ‘아포칼뤼프시스’가 사용되었으며, 그 뜻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나님 자신과 그 목적, 행동에 대한 지식을 알리고 드러내시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계시’는 감추어진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감추인 것을 드러내다, 베일을 벗기다’는 의미를 갖는다. 성경이 특별계시라고 하는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을 드러내는 내용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보존하게 하셔서, 우리에게 전달하신 목적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기 위함이다.


성경이 기록된 이유를 성경에서 살펴보자. 하나님은 왜 성경의 기자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을까? 사도요한은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함이니라”(요 20:31).


즉 성경을 기록한 이유는 두 가지이며


첫째,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게 하려고 함이며

둘째, 그 이름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였으며, 신약성경은 오신 메시야를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장차 심판하러 다시 오실 예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성경 66권 전체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 성경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얻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을 증거한다. 다시 말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닌 어떤 지도자나 어떤 목사, 즉 사람을 증거하는 해석은 무조건 이단이라고 보면 분명하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선지자, 예언자, 사사, 제사장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공동체에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였으며, 때로는 천사를 보내기도 하였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직접 인도하시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날 마지막에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하여 그 말씀을 전하셨으며, 그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 곧 신약성경이다. 그래서 정통신학은 성경의 완전성과 성취성을 말하며 성경은 특별계시가 된다고 말함으로서 계시의 종결성을 주장한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 1:1-2)


즉 성경은 그 안에 감추어진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비밀을 드러내는 기록이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계시’와는 정반대의 뜻이다. 성경은 ‘계시’(아포칼뤼프시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하나님의 계시는 감추어진 것을 알게 하려고 하시는 것이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롬 16:25-26)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엡 3:9-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계 1:1)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엡 3:3-4)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롬 16:25-27)



6) 계시록은 봉하여진 책이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계 5:1-7)


많은 이단들이 계시록 5장 본문을 인용하여 계시록이 봉하여졌다고 주장한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계 5:1)


그러나 본문의 책은 계시록이 아니다. 상식적으로도 본문의 책은 사도요한이 계시록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성령께서 보여주신 천상 보좌에 대한 환상의 장면이다. 아직 계시록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사도요한이 환상을 통하여 본 책이 어떻게 계시록이 될 수 있는가? 계시록 본문의 책은 에스겔서를 인용한 것이다.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퍼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겔 2:9-10)


계시록 5장1절의 책도 안팎으로 썼으며, 에스겔 2장10절에서 책도 안팎으로 썼는데, Johnson 이라는 성경학자는 그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고대에는 두루마리 안쪽에만 쓰는 경우와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것을 opisthograph(오시스토그라프)라고 불렀으며, 한쪽만 글을 쓰는 두루마기는 매매가 가능하였으며, 양면에 모두 글을 쓴 두루마리는 비매품이었다..... 두루마리는 촛물로 봉하고, 진본임을 보증하기 위하여 도장을 찍었는데, 그 당사자만이 인봉을 떼거나 그 내용을 발표할 수 있었다. 원본은 인봉하였고 보관되었으나, 사본은 그렇지 않았으며 공개되었다”


에스겔서와 계시록 5장의 책은 장래의 애가와 애속과 재앙이 기록된 두루마리(비블리온)이다. 공동번역은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엮어대는 상여 소리"라고 번역하였으며, 표준새번역은 "온갖 조가와 탄식과 재앙의 글"이라고 번역하였으며, 현대인의 성경은 "탄식과 슬픔과 재앙의 말"이라고 번역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그 책은 "슬픈 재앙"이 기록된 책이다. 실제로 계시록 6장 이하에서는 예수님이 일곱인을 떼면서 인류에 닥치게 되는 재앙들이 차례대로 나타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보자. 사도요한은 계 4:1에서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듣고 하늘로 올라가 장차 될 일을 환상으로 보게 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계 4:1)


즉 사도요한이 하늘 보좌로 올라가서 본 것이 바로 계시록 5장이다. 만일 그 책이 계시록이고 사도요한이 쓴 것이라면 상식적으로 모순이 되지 않는가? 사도요한이 장차 될 일을 환상으로 보고 쓴 것이 요한계시록인데, 그 환상에서 아직 열어보지 않은 책이 어떻게 아직 쓰지도 않은 계시록일 수가 있는가? 또 계시록을 쓴 저자가 사도요한이면 그 책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을텐데 왜 요한은 그 봉한 책을 펴거나 볼 수가 없어서 울었는가?


성경은 오히려 계시록에 대해서 봉인된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계시록 마지막 부분에 있는 가감에 대한 경고에서 ‘이 책’에 대해서 계시록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사도요한이 책을 다 쓰고 마지막 부분에서 결론을 맺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8-19)


물론 이단들의 교주나 지도자만이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성경을 짜맞추는 것이 곧 가감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 22장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단들에게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즉 22장의 ‘이 책’은 당연히 계시록이며, 저자인 사도요한에게 천사는 "이 책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요한계시록은 봉하여지지 않은 것으로 현재 우리가 보는 성경의 계시록이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계 22:10)



7)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계 10:8-11)


많은 이단들이 계시록 5장과 함께 10장을 인용한다. 계시록 5장의 책을 계시록이라고 하여 봉해졌다고 주장하며, 계시록 10장을 인용하여 계시록을 다시 예언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성경을 다시 예언하라고 주장한다. 천사는 누구에게 다시 예언하라고 말하고 있는가? 어떤 교주나 목사가 아니라 사도요한에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본문은 계시록이 아니라 에스겔서를 인용한 것이다.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2:9-3:3)


즉 계시록 5장과 10장의 책은 같은 것으로서 에스겔 2:9-3:3에서 언급되는 작은 책을 인용한 것이 그 본문의 배경으로 보며, 사도요한이 하나님께 선지자적인 사명을 받은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다시 예언한다”는 것은 재해석을 하라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비유풀이를 하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시 예언하라는 것은 사도요한을 통하여 선포될 말씀이 장차 되어질 사건들과 종말에 대한 구체적 계시라는 것이며, 그 예언의 대상이 과거와 같이 이스라엘 공동체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이제는 그 대상이 전 인류, 전 세계라는 범위를 뜻한다. 이 예언은 11장1절 이하의 말씀으로 보며, "다시 예언하리라"는 것은 계시록을 다시 예언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예언을 하였던 것에 대해서, 지금부터는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을 하라는 뜻으로 본다.


더욱이 어느 이단교주들을 통하여 다시 예언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도요한을 통하여 다시 예언하라는 뜻으로서, 사도요한의 사명을 강조하는 것이다.


 

8) 하나님은 비유로만 말씀하신다.



“내가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는 비유로 말하는 자가 아니냐 하나이다 하니라”(겔 20:49)


이단들은 에스겔서 본문에 대해서 두가지로 해석을 한다. 정명석과 김풍일등은 ‘그’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여호와하나님이 비유로 말하는 자라고 해석을 한다. 또 신천지와 다른 이단들은 ‘그’를 에스겔로 해석하지만, 에스겔이 항상 비유로만 말하였다고 해석을 하는데, 이 두가지가 모두 잘못된 해석이다.



[공동번역] 내가 "아! 주 야훼여, 그러지 않아도 사람들은 저를 보고 비꼬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놈이라고 합니다." 하고 외치니

[표준새번역] 내가 아뢰었다. "주 하나님, 그들은 저를 가리켜 말하기를 '모호한 비유나 들어서 말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현대인의성경] 그때 내가 말하였다. "주 여호와여, 그들은 내가 늘 알아듣지 못하는 비유만 말한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본문은 완악한 이스라엘들이 자신들의 범죄와 타락을 비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재촉하는 에스겔을 말을 듣지 않기 위하여 그에 대해서 조롱하고 불평하여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9) 성경은 봉해져 있다?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사 29:11-12)


본문은 성경이 모두 봉해져 있다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가지의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밀봉된 책과 같다”는 것은 실제로 밀봉된 책이 아니라 비유법, 가정법적인 어법으로서, 글을 아는 자들은 계시가 밀봉되어 있으니 읽을 수가 없다고 변명을 하는 반면에, 글을 모르는 자들은 글을 몰라서 계시를 알 수 없다고 변명을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계시는 그 멧세지를 알게 하기 위하여 전하는 것이며, 성경이 봉해져 있다고 하는 주장은 유대인들의 전자와 같은 변명과 같은 내용이 될 것이다.



[공동번역] 이렇듯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계시되었지만, 그것은 밀봉된 책에 쓰여진 말씀과 같다. 글 아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책이 밀봉되었는데 어떻게 읽겠느냐?" 할 것이다. 글 모르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다.


[표준새번역] 이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밀봉된 두루마리의 글처럼 될 것이다. 너희가 그 두루마리를 유식한 사람에게 가지고 가서 "이것을 좀 읽어 주시오" 하고 내주면, 그는 "두루마리가 밀봉되어 있어서 못 읽겠소" 하고 말할 것이다. 너희가 그 두루마리를 무식한 사람에게 가지고 가서 "이것을 좀 읽어 주시오" 하면, 그는 "나는 글을 읽을 줄 모릅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그러므로 모든 예언적인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해진 책과 같을 것이다.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어 읽어 보라고 해도 그것이 봉해졌으므로 그는 읽을 수 없다고 대답할 것이며 또 무식한 자에게 주어 읽어 보라고 하면 무식해서 읽을 수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바로 본문 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


다시 말하면 성경이 봉해진 책이라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예언적 계시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마치 봉해진 책과 같이 생각하여 그 계시를 듣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즉 실제로는 봉해진 책이 아니라는 반대의 뜻이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는 완악한 이스라엘들이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를 밀봉된 것이라고 변명을 하거나 혹은 글을 모른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정작 외면하고, 사람의 가르침만 따른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10) 때가 이르면 비유를 풀어주실 것이다?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요 16:25)


요한복음 본문 역시 성경이 감추어져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첫째, 본문을 보면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고 말하고 있음으로서 성경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본문은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본문 앞에서 이미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을 뜻한다. 예수님의 말씀하신 ‘이것’의 견해는 세 가지로 추정될 수 있다.


(1) 21절에 언급된 해산하는 여인에 관한 비유.

(2) 14:1에서 본장 24절까지 말씀하신 것으로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비사들.

(3) 지금까지 예수가 말씀하셨으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모든 것 등인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시점과 장소가 12:36부터 기점으로 구분되는 것이 명백하므로 '이것'이 12:36 앞에 말씀하신 것을 포함한 (3)번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이것'으로 번역된 헬라어가 복수이므로 (1)번도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두번째의 추정이 가장 적당하다. 즉 14장1절부터 살펴본다면 내용은 하나님아버지에 대한 것, 특히 천국에 대한 것이며, 그 방법은 성령 보혜사를 통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옳다. 그 천국에 대한 비밀을 밝히 알리시는 '때'는 성령보혜사가 오시는 때를 의미하므로 예수와 지상 생애를 함께 했던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성령이 오시는 때에 가서야 하나님아버지에 관한 것을 포함한 모든 비밀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옳다.



11) 또 다른 보혜사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보혜사는 성령이다. 그런데 다음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다른 보혜사가 교주나 지도자라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수없이 많다. 우리나라에 자칭 보혜사가 40명 이상이라고 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많은 이단들이 “보혜사”(保惠師)가 “은혜로 보호하는 스승”이라는 뜻이라고 한문을 풀어서 주장한다. 그들은 보혜사가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를 음역한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한문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파라"라는 헬라어는 "옆에"라는 뜻이고 "클레토스"는 "클레오"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는데 "부르다"라는 의미로서 파라클레토스는 문자적으로는 "옆에서 부르는 자"가 되지만, 그 단어는 헬라의 법정용어로서 피고측 변호인이라는 뜻을 갖는다.


예를 들어 예수를 야소(耶蘇)라고 하는데 그것도 한문으로 해석할 것인가? 베드로는 한문으로 음역할 때에 피득(彼得)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保惠師의 “사”가 스승 “師”이므로 스승인 이만희와 같은 교주를 말한다는 해석은 웃을 수도 없는 코메디에 가깝다. 그렇다면 醫師는 의학을 전하는 스승이고, 按摩師는 안마를 전하여 주는 스승인가? 이만희는 牧師를 가축을 치는 일을 가르쳐주는 스승으로 해석하는가?


그렇다면 성령이 보혜사인데 왜 14장16-17에서는 또다른 보혜사를 보낸준다고 하였을까?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파라클레토스)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2:1)


즉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는 헬라의 법정용어로서 "피고측 변호사"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장차 심판에서 우리를 변호하여 준다는 뜻으로서 예수님도 보혜사이므로 성령이 또다른 보혜사가 되는 것이다.


[공동번역] 나는 믿음의 자녀인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혹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수도이십니다.


[표준새번역] 나의 자녀 여러분,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누가 죄를 지을지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현대인의성경] 나의 믿음의 자녀들이여,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나는 이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만일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KJV] My little children, these things write I unto you, that ye sin not. And if any man sin, we have an advocate with the Father, Jesus Christ the righteous:

[NIV] My dear children, I write this to you so that you will not sin. But if anybody does sin, we have one who speaks to the Father in our defense--Jesus Christ, the Righteous One.


아래의 주장은 웃을 수도 없는 신천지 이만희의 주장이다.


“성경이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기록된 바 그 예언이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질 말씀이라면,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의 말씀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대한민국 사람을 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로 정확하게 기록했을 터이고, 또한 하나님이 기록된 말씀대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령의 역사를 믿는 성도라면 아멘으로 화답할 것이다.”(성도와 천국, 9쪽)


12) 성경은 봉함되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이 본문 역시 많은 이단들이 인용하는 구절인데, 대부분의 이단들은 두가지의 경우로 해석을 한다. 첫째,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의 해석인데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를 고속도로, 고속철, 항공편으로 해석하기도 하며, 지식을 컴퓨터의 정보로 해석하기도 하여 종말이 왔다고 해석을 하는데, 그러나 본문은 그러한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을 엉터리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갈팡질팡하는 것에 대한 경고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공동번역] 너 다니엘아, 이 말씀을 비밀에 붙여 마지막 그 때가 오기까지 이 책을 봉해 두어라. 많은 사람들이 읽고 깨쳐 잘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갈팡질팡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표준새번역] 그러나 너 다니엘아, 너는 마지막 때까지 이 말씀을 은밀히 간직하고, 이 책을 봉하여 두어라. 많은 사람이 이러한 지식을 얻으려고 왔다갔다 할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다니엘아, 너는 이 예언을 책에 기록하여 인을 쳐서 봉하고 마지막 때까지 잘 간수하여라. 그 때에는 많은 사람이 지식을 쌓으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할 것이다."

 

두 번째 해석은 성경이 봉함되었다는 비유풀이 이단들의 해석이다. 그러한 해석 역시 잘못된 주장이다. 본문에서 ‘봉함하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문맥을 살펴 보아야 한다.


단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단 12:5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단 12:6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더라


단 12:7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단 12:8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니

단 12:9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단 12:10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단 12: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단 12:12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단 12:13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다니엘서 12장 본문은 성경이 봉해져 있다는 뜻이 아니다. 본문은 1260일(3년반)에 대한 내용을 뜻하는 것이며, 다니엘서가 말하는 직접적이며 일차적인 1260일의 의미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성전모욕 사건을 예언한 것이다.


그렇다면 1260일, 즉 3년 반(한때 두때 반때)이 무슨 뜻일까?


성경에는 ‘한 때 두 때 반 때’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일천 이백 육십 일(1260일), 혹은 마흔 두 달(42달), 삼년 반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모두 동일한 용어이며 동일한 기간이다. 이 용어는 주로 구약의 다니엘서와 신약의 계시록에서 나타나는데, 사도요한이 이것을 계시록에서 기록할 때에 다니엘서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이 기간은 일차적으로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성전 훼손’을 뜻하며, 또한 계시록에서는 ‘종말에 있게 될 적그리스도 통치 아래의 박해기간’을 말한다고 본다. 비유풀이를 하는 많은 이단들이 인용하는 것과 같이 성경전체가 봉해졌다는 뜻과 전혀 관련이 없다.


13) 그날은 도적같이 오지 않는다?


이 성경구절에 대한 해석도 이단들이 주로 인용하는 것으로서 보편적인 성경구절을 모두 외면하고 부분적인 한 구절만을 인용하여 성경전체를 다르게 조작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예수의 재림에 대해서 그 날과 때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또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도적은 언제 온다고 통보를 하지 않으며, 아무도 모르게 갑자기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7)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살후 2:2)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3)


그런데 인격적이며 우주적이고 영광적이며 신체적인 예수의 재림을 부정하거나,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은 성경에서 “믿는 자들은 그 시간과 때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천지와 지방교회와 같은 이단, 그리고 특히 시한부종말론자는 다음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살전 5:4-6)

 


⓵ 앞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성경에는 수많은 구절이 재림의 날을 알 수가 없으며 도적같이 임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단들은 그 많은 구절에 대해서는 모두 외면하고 한 구절만을 제시하면서 재림의 날짜가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신천지는 이만희에게 재림예수의 영이 이미 임하였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야만 한다. 또 지방교회는 양태론자로서 예수가 이미 성령으로 오셨다고 말하여야만 하며,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 그들의 부활이며 재림이기 때문에, 재림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여야만 한다.


아래는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의 주장이다.


“주님의 오심은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주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지만 여러분이 생각한 대로는 아닐 것이다. 주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안에서부터 오실 것이다. 여러분은 그분이 갑자기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이 여러분으로부터 오실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위트니스 리, 왕국, 329쪽)


물론 시한부종말론자들은 그 날짜를 알 수가 있다고 주장하기 위하여,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여야 할 것이다. 즉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성경을 다른 뜻으로 해석하여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 경우에 본문이 대표적으로 악용되어진다.

그러나 성경본문이 과연 그런 뜻일까?

성경본문의 앞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아래 본문이 과연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살전 5:1-2)

 

성경을 잘 보면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밤에 도적같이 갑자기 이를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편지를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⓶ 그렇다면 아래 성경본문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지 않는다는 뜻일까?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살전 5:4)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바로 앞의 5:1-2절은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할 것을 너희가 잘 알고 있다고 이미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재림에 사용되는 단어는 ‘엘코마이’, 혹은 ‘파루시아’로서 come (오다, 임하다)을 뜻하지만, 4절의 본문에서 사용된 ‘임하다’라는 단어는 ‘카탈람바노’로서, overtake(덮치다, 사로잡다, 달성하다)로 번역이 된다.


이 단어는 예수님이 ‘온다, 재림한다’는 단어로 사용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이 단어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막 9:18(귀신에 잡히다), 요 8:3(간음 중에 잡힌), 요 12:35(어두움에 잡힌), 고전 9:14(얻다), 빌 3:12(잡힌 바)등과 같이 ‘붙잡다. 취하다, 잡히다’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다.


다시 말하여 예수를 믿는 형제들, 빛의 아들들에게는 “그 날이 사로잡지 못한다, 혹은 덮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무슨 뜻인고 하면, 예수님의 재림은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갑자기 오게 된다. 그러나 어두움에 거하는 불신자들에게는 그 날이 재난과 심판의 날이 되겠지만, 빛에 거하는 믿는 자들에게는 그 날이 언제가 되든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소망이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날이 신자(信者)들을 사로 잡거나 덮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본문은 ‘어두움’의 뜻을 죄악과 타락에 대한 심판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을 ‘빛에 거하는 자들’이라고 비유한 것이다. 이 성경구절을 “빛의 아들은 재림의 날짜를 알 수가 있다”고 해석하거나, “도적같이 오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이단들은 정말 황당한 해석이다. 즉 자신들의 교리에 성경을 짜맞추기 위하여 해석을 조작하고 있으며, 다른 번역성경을 보면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공동번역] “교우 여러분, 그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중의 도둑같이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태평세월을 노래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들이닥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해산할 여자에게 닥치는 진통과 같아서 결코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암흑 속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그 날이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살전 5:1-4)

 

[표준새번역] “형제자매 여러분, 그 때와 시기를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아기를 밴 여인에게 해산의 진통이 오는 것과 같이,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 날이 여러분에게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살전 5:1-4)

 

[현대인의성경] “형제 여러분, 그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날이 밤중에 도둑같이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기 때문입니다. 마치 해산할 여자에게 고통이 닥치듯 사람들이 평안하고 안전한 세상이라고 마음 놓고 있을 때 갑자기 그들에게 멸망이 닥칠 것이며 사람들은 절대로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그러나 여러분은 어두움 가운데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날이 여러분에게 도둑처럼 닥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살전 5:1-4)


재림의 날짜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왜 이단적인 주장인가?



특히 몇 년전 다미선교회과 종말론을 주장하는 교회등이 종말의 날짜를 주장하여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여러 번을 종말이 온다고 거짓예언을 하였고, 19세기 초에 미국의 윌리엄밀러라는 시한부종말론자는 성경의 다니엘서 8장14절의 2300주야를 2300년 후로 잘못 해석하여, 1844년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하다가 실패로 끝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허탄과 실의에 빠지게 되자, 그 종말론을 다시 재해석시킴으로 안식교회가 시작되어 진다.


안식교에서는 윌리엄밀러의 종말론이 틀린 것이 아니라, 착각하여 잘못 해석하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안식교에서는 윌리엄밀러의 종말론을 ‘첫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부르며, 1844년에 재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때에 예수님이 하늘에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시어 인류를 조사심판을 하고 계신다고 안식교는 지금도 그와 같은 비성경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심지어 하나님의 교회(안증회)에서는 세 번의 종말론을 주장하였다.


많은 이단들이 어떠한 상징과 비유에 대한 징조를 매우 임박한 환란과 종말의 시작으로 적용시키지만, 우리는 어떤 종류의 시한부종말론이라고 할지라도 그 시간과 때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말하여야만 한다.


시한부종말론 이단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또 다른 구절 중에 하나가 마태복음 24장 32-34절이며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 독립 1948년으로 해석하여 한세대 안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을 한다. 이와같이 어떤 징조나 사건을 시한부종말론으로 단정하는 해석은 이단적인 주장이다.


위 13가지는 많은 이단들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주로 인용하는 대표적인 오역 구절로서 그들의 해석은 주의 깊게 살펴보면 모두 엉터리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성경공부를 가르친다는 곳에서 위와 같은 성경해석을 가르친다면 그곳이 심각한 이단이라는 것을 하루 빨리 깨닫고 그들과 교류를 단절하고 나오기 바란다.



                                                          이인규 

dsmed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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